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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대로변에는 학원만큼이나 정신건강의학 병·의원이 즐비하다. 김건희 객원기자



전국에서 사교육 바람이 가장 거세다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는 학원만큼이나 정신건강의학 병·의원이 즐비하다. 심리상담소 또한 흔하다. 7월 10일 오후 5시 대치동 학원가 중심 대로변에 들어선 한 정신건강의학과를 제일은행 지점 방문했다. 병원 대기실에는 중고생으로 보이는 학생 7명과 학부모가 굳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한 학부모는 "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의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 병·의원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3년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정신질환 초기 진료를 위해 종합임상심리 검사비로 40만 원 채권최고금액 을 썼다"며 "진료비는 1회당 6만 원에서 12만 원이 든다"고 설명했다. 

고교 1학년생인 A군은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그가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6월 말부터였다. A군은 어려서부터 영특한 면모를 보였고, 대구에서 살다가 9세 때 부모를 따라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그때부터 은행개인대출 유명 입시학원을 줄줄이 다닌 덕에 부모의 바람대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경시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고등수학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중학교 3년 내내 고등수학 교과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익혔다. 

강남 3구 10대 정신과 진료 4년 새 64% 증가 문제는 고등학교 때부터 육손 나타났다. 6월 모의고사에서 국어 성적이 4등급으로 떨어지자 A군은 폭식증, 무력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수학 선행학습을 하느라 국어 공부에 소홀해 교과 간 학습 균형이 깨진 게 이유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력증은 악화했고, 국어를 비롯해 수학마저 1학기 내신등급이 곤두박질쳤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힘들고 집에서는 엄마의 감시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 홍콩상하이은행 시작했다. A군과 학부모 사이에 다툼이 빈번해졌고, 답답함을 견디다 못한 A군이 괴성을 지르며 자해를 시도하자 그제야 A군의 어머니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7월부터 병원을 찾아 아들이 치료받게 하고 있다. 

상담 과정에서 A군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담당의를 당혹스럽게 했다. "어머니에게 바라는 점이 뭐냐"는 의사의 질문에 A군은 "방문 좀 닫게 해달라"고 말했다. A군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어려서부터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방문을 열어둔 채 생활해 왔다고 한다. 문득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지 못하고 부모의 감시에 노출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A군의 어머니는 식탁 앞에 앉아 성경책을 읽으며 A군의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A군이 졸거나 딴짓을 한다고 여겨 곧장 방으로 달려왔다. 그러면서 "지금이 졸 때냐"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A군은 어머니에게 "조금만 쉬게 해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서울 아동·청소년 정신과 진료 병원의 36%가 강남 3구A군이 병원으로부터 받은 진단명은 현대인에게 '마음의 감기'로 불리는 우울증. 우울증은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 경제적 불안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지만, A군은 이미 10대 중반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다. 발병 요인은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과도한 기대를 받으며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최근 정신건강을 위협받는 대한민국 청소년이 늘고 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을 진료한 전국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및 의원은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2066곳으로, 환자 수는 24만9059명에 이른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은 2019년 18만6361명에서 꾸준히 늘어 2024년 30만7097명을 기록했다. 5년 새 환자 수가 64.8% 증가한 셈이다. 올해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눈여겨볼 것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10대 청소년의 정신건강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서울에서 아동·청소년을 진료한 정신과 병원은 599곳, 환자 수는 6만6844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서울 전체 병원의 36%인 215곳이 강남 3구에 있고, 여기서 진료한 환자 수는 2만3374명(35%)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강남 3구에 정신건강 질환을 앓는 10대 환자가 많은 이유로 강남 3구 학부모의 과도한 교육열과 과열된 선행학습 문화 속에서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성취와 평가에 시달리며 쌓인 학업 스트레스를 지목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열된 입시 경쟁은 우리나라가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실력주의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입시제도를 개선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강남 3구는 경쟁사회의 최정점에 있기에 부작용이 더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강남 3구 지역 학부모의 경제력과 학원이 밀집한 지역적 요인도 원인으로 꼽힌다. '아직도 정신과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저자인 허찬희 마음편한정신건강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중증화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10대가 성장하는 동안 꾸준히 치료받아야 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에 같은 문제가 나타나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병원을 찾고 진료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강남 3구에 소아청소년 정신과가 몰려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득수준과 10대 정신질환 빈도 비례?




각종 학원이 몰려 있는 대치동 학원가. 김건희 객원기자



그의 말처럼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에서 정신질환으로 진료받은 10대 환자의 수가 더 많았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2024년 서울시 9세 이하 우울증 및 불안장애 건강보험 청구 건수'에 따르면 강남 3구에서 1103건이 청구됐다. 나머지 22개 자치구 평균은 180건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최근 몇 년간 10대 환자의 외래 진료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소득 수준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소득수준이 높고 학원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10대의 정신질환이 더 많이 발병하는 추세다. 이는 강남 3구가 다른 지역보다 경제적 여력을 가진 가구가 많아 좀 더 적극적으로 정신질환 치료를 받다 보니 10대 환자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에 마음의 병을 앓는 학생들이 약물에 의지하는 현상도 강남 3구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건네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서울에서 얀센의 '콘서타' 처방이 가장 빈번하게 이뤄진 곳은 강남구(6만6227건)였다. 송파구(4만5104건), 서초구(4만4873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른바 '강남 3구'에서만 15만 건이 넘게 처방된 것이다. 
콘서타는 본래 ADHD 치료제로 널리 알려졌지만,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학생들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이른바 '공부 잘하는 약'으로 통한다. 이러한 인식 탓에 2019년 전국에 걸쳐 36만3763건의 콘서타 처방 건수가 2023년에는 120만1701건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정신 건강 상담 및 치료에 대한 인식 개선 시급 문제는 콘서타가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되는 약물이어서 오남용 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콘서타의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은 뇌 속의 도파민 농도를 높여 일시적으로 인지 기능을 향상하지만, 오남용 시 두통·불면증·식욕감소 같은 부작용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환각·망상·자살 시도까지 일으킬 수 있다. 

2024년 10대 마약사범은 1477명으로 전년 대비 3배가 늘었다. 전체 10대 마약사범 가운데 93.3%가 식욕억제제와 ADHD 치료제 등 향정신성 약물 사범이었다. 정부는 2024년 9월부터 ADHD 치료제 오남용이 의심되는 의료기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는 학교폭력 등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강남 3구의 학폭 발생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 서울 강남구의 학폭 심의 건수는 48건을 기록했다. 2021년 18건, 2022년 33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교육부는 학생의 정신 건강 악화를 막기 위해 초등학교 1·4학년과 중·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정서와 행동 특성을 검사하고 있다. 검사 결과,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은 교내 위(Wee) 클래스에서 상담을 받거나 외부에서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서울 강남구 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6학년 B양은 2023년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통해 상담을 받았다. B양은 3학년 때부터 심화학습으로 유명한 H수학학원을 다녔다. 수학학원 월말평가에 대비하고자 주말은 물론이고 공휴일, 심지어 어린이날에도 오전 9시부터 4시간 동안 내리 수학 과외학습을 받아야 했다. 첫 월말평가에서 수학 문제를 4개밖에 풀지 못했고, 시험시간 내내 초조해하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 이후로 B양은 틈만 나면 엄지손톱 거스러미를 뗐고, 급기야 손가락 피부 전체를 뜯었다. 피가 나고 굳은살이 박여도 피부 뜯기를 멈추지 않았다. 때마침 B양의 학생정서행동특섬검사 결과를 눈여겨본 담임교사가 B양의 손가락 상태를 알고 학부모에게 B양을 전문기관에 데려가 상담과 치료를 진행하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B양의 어머니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료실을 찾는 일부 학부모는 자녀의 정신질환을 애초에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과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학부모가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진 그의 말이다. 

부모의 인식 개선 없이 자녀 정신 건강 회복 어려워"‘당신 자녀가 지금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전문의가 진단하면 보호자인 학부모는 대부분 '이 애가 왜 우울증이냐? 내가 특별히 못 해준 것도 없고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는 반응을 보인다. '우울증은 6개월 내외 약물치료와 전문의 상담을 병행해야 한다'는 부연 설명도 무시하고 '이 애는 의지가 나약하다. 배가 불러서 그렇다. 꼭 약을 복용해야 하느냐? 운동 열심히 하고 앞으로 학원 수를 줄여 학업량을 조절하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절망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부모의 이런 태도로는 아이의 마음의 병을 씻겨줄 수 없다."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음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허찬희 원장은 이렇게 조언했다. 
"초·중·고교생을 키우는 학부모는 대개 1970년대 중후반에서 1980년대 초중반생이다. 이들은 혹독한 경쟁을 뚫고 경제력을 쌓은 세대다. 게다가 자기 과시적 온라인 문화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식을 키우고 있기에 부모의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자식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아이의 1차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따라서 아이와 대화하고 싶다면 부모가 자신의 고정관념과 성공 경험, 철학을 내려놓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무기력함이나 우울함이 나타나게 된 계기가 무엇이고, 현재 감정이 어떠하며, 학업 부담감 수준을 파악하는 게 좋다."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