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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교사가 지난 21일 세종시 신대리 연서초등학교에서 한 아이의 만들기를 돕고 있다. 유대근 기자



"얼마 전에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난 학생의 부모님께 전화드렸더니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당연한 말 같지만 교사 일을 10년 하며 처음 들어본 말이었습니다."


11년 차 초등 교사 노연경 반포 재건축 (34)씨는 올해 세종시 연서면 신대리의 연서초등학교로 전근 왔다. 10년간 도심지 학교에서 몸과 마음이 상하며 '교사 때려 치울까'를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던 그는, 이 곳 아이들을 가르치며 오히려 자신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
연서초는 아파트나 빌딩 숲이 아닌 논밭과 복숭아 농장, 소 축사를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시골 학교다. 아이 1000만원 대출 들이 급감해 면 단위 학교들이 폐교한다는 뉴스가 빈번이 보도되지만 노 교사는 이 아담한 학교에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교대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현실
노 교사는 '학교를 좋아하던 아이'로 스스로를 기억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 친구나 선생님과 재잘댔던 추억, 학교에서 나는 냄새마저도 좋았다고 목돈 적금 한다. 졸업하고도 학교에 남을 수 있는 직업이 뭘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교사였다. 그는 "특히 귀여운 어린아이들을 좋아했기에 교대에 진학해 초등 교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2014년 첫 임용 뒤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교대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일 처리는 공문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 체크카드 빡해 학교장을 당황시킨 적도 있고 온라인 행정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서툴렀다. 무엇보다 수업을 처음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 아이들이 귀여운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지나갔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뾰족한 말들이었다. 임용 후 10년간 도심지 초등학교에서 근무한 노 교사는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아 개인회생제도절차 이가 학교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어요. 부모님께 연락드려 사실을 알렸는데 '선생님이 잘 봐주시지 않아서 그런 거다'라는 원망을 들었죠. 2학년 단원평가를 채점해 틀렸다고 했더니 화를 내며 시험지를 찢어 던진 친구도 있었고요. 부모님이 교실 안까지 들어온 경우도 있어요. 아이로부터 욕설을 듣는 건 교사들이 흔히 겪는 일이에요."



아이와 함께 앉아 놀고 있는 노연경 교사. 노 교사 제공


'교사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던 올해 초, 그가 연서초로 전근 온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1지망으로 썼던 학교에 배정받지 못하면서 이곳에 오게 됐다. 보통 시골학교는 교사들의 지원율이 낮다. 도심지와 비교해 조기 교육이나 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 보니 한글을 떼지 못하고 입학한 아이도 제법 됐다. 한 학급에 5명쯤은 유아 영어학원(영어 유치원) 출신이던 도심지 학교와 달랐다. 게다가 노 교사가 처음 맡은 학급은 1학년 2반. 손이 가장 많이 가는 학년이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겨내는 힘"
걱정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교과와 연계한 생태교육으로 특화한 이 학교는 체험학습을 1년에 78번이나 갈 만큼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들이 학교 근처 텃밭에서 감자 농사를 직접 짓고, 인근 배나무를 두 그루 분양받아 꽃가루받이부터 한다.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교실 밖으로 나가 첨벙첨벙 물장구치고, 뛰다가 넘어져도 친구들의 "이겨내! 참아내!"라는 응원을 들으며 씽긋 웃고 넘긴다.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나올 만큼 조기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시대에 이렇게 느긋해도 될까. "괜찮다"는 게 노 교사의 대답이다.
그는 "우리 친구들(연서초 제자들)은 마음 주머니가 넓다"며 "초등학교 땐 공부 한 자 더 하는 것보다 견뎌내고 회복하는 힘을 기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무균실' 같은 공간에서만 생활하지 않으니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내심과 참을성이 좋은 것 같아요.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잘 이겨낼 수 있는가 잖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 친구들은 어렸을 때 공부만 한 아이들보다 강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노연경 교사의 팔에 종이를 붙이며 놀고 있다. 노 교사 제공


좁은 동네의 학교이다 보니 아이들이 지역 사회 안에서 성장한다는 느낌도 강하다. 이강의 연서초 교장은 "하반기에는 아이들이 기른 배추와 무를 수확한 뒤 김장을 담가 주변 독거 어르신들께 나눠드린다"면서 "그런 경험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한다"고 말했다.
물론 시골학교의 교사 생활이 누구에게나 목가적이거나 낭만적이지는 않다. 면 단위 학교에는 문해력에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아 학습 지도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교육 여건이 열악한 곳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가 놀다 넘어지는 것을 '교사' 탓으로 돌리지 않는 학부모의 자세만으로도 교사의 마음은 보호받는다.



제자가 그려준 노연경 교사의 모습. 노 교사 제공


'어떤 교사로 학생들에게 기억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동료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잊혀지는 게 가장 좋다'고 얘기했었다"는 뜻밖에 답이 돌아왔다. 학생이 졸업 후에 교사를 찾아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일도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을 공유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달라졌다.
"우리 반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다 보니 소박한 꿈이 생겼어요. 아이들이 다 컸을 때 지금을 떠올리며 '그때 그 선생님과 지낼 때 참 재밌게 학교에 다녔지'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세종=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