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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5월,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그린 삽화. 주남마을 앞 5.18사적지 표지석과 함께 선 안내판에 그려져 있다.
ⓒ 이돈삼
80년 5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광주 봉쇄작전 때 일어났다. 당시 계엄군은 시위대는 물론 민간인까지 적(敵)으로 간주했다. 아 영세민전세자금대출 무런 잘못 없는 민간인 57명이 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5·18기간 총상 사망자(135명)의 42%에 이른다. 주남마을, 송암동과 진월동, 문흥동 등이 주된 학살지였다.
5월 21일 금남로를 피로 물들인 공수부대가 시민군 등장과 함께 도청에서 물러갔다. '계엄군' 이름표를 단 공수부대는 시위 확산 lig손해보험우리캐피탈 을 막기 위해 외곽 봉쇄에 나섰다.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은 주남마을과 녹동마을에서 오가는 차량과 시민을 막았다. 누구라도 광주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광주로 들어올 수도 없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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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남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45년 전 그날 계엄군이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인 현장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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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주남마을에 머물던 11공수 62대대가 화순 방면으로 가던 미니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버스에 타고 있던 18명 가운데 1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중상자 2명은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총으로 쏴 죽이고 암매장했다.
계엄군은 미니버스를 인근 한국신용평가원취업 하천에 밀어 넣고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이 사실은 당시 유일한 생존자인 여고생 홍금숙과 공수부대원 최영신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사망자에는 손옥례, 김춘례, 박현숙 등 10대 여성 4명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손옥례는 가장 잔인하게 희생됐다. 아랫배에 총탄 7발을 맞고, 왼쪽 가슴은 대검에 찔렸다. 온몸은 두들겨 맞아 두부처럼 짓이겨져 있었다. 계엄군이 여고생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말의 진앙이다.
딸의 주검을 확인한 아버지(손용직)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정인순)는 사지가 경직되고 반신불수가 됐다. 몇 년 뒤 세상을 등졌다. 일가족이 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다.
▲ 주남마을 앞에서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에 의해 숨진 손옥례의 묘. 손옥례는 아랫배에 총탄 7발을 맞고, 왼쪽 가슴은 대검에 찔렸다. 국립5.18민주묘지에 그의 부모가 함께 모셔져 있다.
ⓒ 이돈삼
▲ 주남마을 뒷산에 세워진 희생자 위령비. 큰 부상을 입은 채 계엄군에 끌려갔다가 다시 총살을 당해 암매장된 양민석과 채수길의 시신이 발굴된 곳이다.
ⓒ 이돈삼
계엄군의 무자비한 학살 만행은 계속됐다. 미니버스 아닌, 다른 버스에도 총격을 가했다. 2021년 5월 KBS 특집 다큐 〈나는 계엄군이었다〉를 통해 방영된 당시 11공수여단 소속 최병문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계엄군은 인근 용산마을에서도 화순 쪽으로 가는 시민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마을 주민들은 계속되는 총소리에 치를 떨었다.
주남마을 뒷산에 암매장된 시신은 5·18 이후 발굴됐다. 주민 신고로 수습돼 망월묘역에 묻혔다. 총살돼 암매장된 시민은 유전자 감식을 통해 양민석과 채수길로 밝혀졌다.
2010년 주남마을 뒷산에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희생자 17명과 생존자를 표현한 사슴 벽화도 마을에 그려졌다. 위령비로 오가는 길엔 문병란의 시 '민주로에서' 등 시비와 치유의 상징 솟대를 세웠다. 미니버스를 형상화한 시내버스 정류장도 도로변에 만들었다.
▲ 주남마을 벽화의 일부. 미니버스 희생자와 생존자를 사슴으로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 미니버스를 형상화한 시내버스 정류장. 주남마을 앞 도로변에 설치돼 있다.
ⓒ 이돈삼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광목간 도로변 송암동과 진월동에서도 이어졌다. 계엄군의 광주 봉쇄작전에 따라 5월 21일 20사단 62연대가 송암공단 부근에 배치됐다. 계엄군은 민간인 차량에 대해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
5월 24일엔 계엄군끼리 오인 사격이 일어났다. 도청 재진입을 목표로 한 상무충정작전을 위해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주남마을에서 광주공항으로 가던 중, 효천역 인근에서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보병학교 교도대의 공격을 받았다.
계엄군이 또 다른 계엄군한테 공격받은 것이다. 총격으로 공수부대원 9명이 죽고 38명이 부상당했다. 계엄군 지휘체계 이원화에 따른 혼란을 여실히 드러냈다.
▲ 진월동과 송암동은 80년 5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 곳이다. 사진은 당시 민간인 학살이 이뤄진 광목간 도로 진월동 구간이다.
ⓒ 이돈삼
▲ 진월동과 송암동 민간인 학살 현장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광주와 나주를 연결하는 광목간 도로변은 계엄군의 광주 봉쇄작전 이후 민간인 학살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 곳이다.
ⓒ 이돈삼
같은 계엄군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공수부대는 주변 민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아무런 죄 없는 민간인을 향한 분풀이 학살이었다.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효덕동 묘지에서 놀던 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던 중학교 1학년 방광범도 포함됐다.
김평용과 송정교는 효덕초등학교 앞에서, 김종철은 대주파크빌 앞에서, 박연옥은 총소리에 놀라 몸을 숨긴 진월동 교량 아래에서 총을 맞았다. 계엄군은 숨은 시민군을 찾는다며 집안을 뒤져 청년들을 끌어냈다. 권근립과 임승찬·김승후·박재영이 희생됐다. 강복원·박인천·노경운·왕태경·임종인은 남선연탄 앞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 80년 5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다가 총을 맞은 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의 묘.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다.
ⓒ 이돈삼
▲ 옛 광주교도소 앞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80년 5월 당시 이곳은 제3공수여단이 주둔하며 담양 쪽으로 가는 도로를 막고 오가는 차량과 시민에 총격을 가했다.
ⓒ 이돈삼
옛 광주교도소는 광주에서 담양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호남고속국도 동광주 나들목과 인접한 교통 요충지였다. 이 일대는 전남대학교에 머물던 3공수여단이 5월 21일 31사단과 교체 투입됐다.
3공수는 도심에서 붙잡은 시민을 태운 군용탑차에 분말 최루탄을 터트려 9명을 질식사시켰다. 3공수 본부중대 병장의 증언이 있었지만, 이들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다. 3공수는 담양 쪽으로 가는 도로를 막고 오가는 차량과 시민을 공격했다. 담양군민 고규석과 임은택이 죽고 2명이 크게 다쳤다.
계엄군은 시위대의 교도소 습격에 맞선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희생자는 집으로 향하던 무고한 시민이었다. 계엄군과 시민군의 총격전도 아닌, 계엄군의 일방적인 사격이었다.
일부 희생자는 암매장됐다. 당시 광주시청 공무원 조성갑에 따르면, 5·18직후 교도소 주변에서 암매장 시신 8구가 발견됐다. 암매장 증언은 더 있는데,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 박관현 열사와 김남주 시인이 갇혔던 옛 광주교도소 내부. 교도소가 삼각동으로 옮겨가고 5.18 40주기를 맞아 한때 개방된 5년 전 모습이다.
ⓒ 이돈삼
'…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
김남주 시 '학살1'의 일부분이다. 남민전 사건으로 광주교도소에 갇혀 있던 김남주는 교도소 밖 상황을 전해 듣고 많은 옥중시를 남겼다.
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5·18 진상규명과 재소자 처우개선을 외치며 40여 일 단식 투쟁을 한 곳도 여기다. 단식 투쟁은 들불야학 강학 신영일도 함께했다. 광주교도소는 2015년 10월 새로 지은 삼각동으로 옮겨갔다.
▲ 문흥동 고가도로에서 본 옛 광주교도소 풍경. 높은 담과 감시탑에서 오래 전 교도소였음을 직감한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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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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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 주남마을 뒷산에 세워진 희생자 위령비. 큰 부상을 입은 채 계엄군에 끌려갔다가 다시 총살을 당해 암매장된 양민석과 채수길의 시신이 발굴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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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의 무자비한 학살 만행은 계속됐다. 미니버스 아닌, 다른 버스에도 총격을 가했다. 2021년 5월 KBS 특집 다큐 〈나는 계엄군이었다〉를 통해 방영된 당시 11공수여단 소속 최병문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계엄군은 인근 용산마을에서도 화순 쪽으로 가는 시민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마을 주민들은 계속되는 총소리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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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남마을 벽화의 일부. 미니버스 희생자와 생존자를 사슴으로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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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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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5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다가 총을 맞은 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의 묘.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다.
ⓒ 이돈삼
▲ 옛 광주교도소 앞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80년 5월 당시 이곳은 제3공수여단이 주둔하며 담양 쪽으로 가는 도로를 막고 오가는 차량과 시민에 총격을 가했다.
ⓒ 이돈삼
옛 광주교도소는 광주에서 담양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호남고속국도 동광주 나들목과 인접한 교통 요충지였다. 이 일대는 전남대학교에 머물던 3공수여단이 5월 21일 31사단과 교체 투입됐다.
3공수는 도심에서 붙잡은 시민을 태운 군용탑차에 분말 최루탄을 터트려 9명을 질식사시켰다. 3공수 본부중대 병장의 증언이 있었지만, 이들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다. 3공수는 담양 쪽으로 가는 도로를 막고 오가는 차량과 시민을 공격했다. 담양군민 고규석과 임은택이 죽고 2명이 크게 다쳤다.
계엄군은 시위대의 교도소 습격에 맞선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희생자는 집으로 향하던 무고한 시민이었다. 계엄군과 시민군의 총격전도 아닌, 계엄군의 일방적인 사격이었다.
일부 희생자는 암매장됐다. 당시 광주시청 공무원 조성갑에 따르면, 5·18직후 교도소 주변에서 암매장 시신 8구가 발견됐다. 암매장 증언은 더 있는데,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 박관현 열사와 김남주 시인이 갇혔던 옛 광주교도소 내부. 교도소가 삼각동으로 옮겨가고 5.18 40주기를 맞아 한때 개방된 5년 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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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 '학살1'의 일부분이다. 남민전 사건으로 광주교도소에 갇혀 있던 김남주는 교도소 밖 상황을 전해 듣고 많은 옥중시를 남겼다.
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5·18 진상규명과 재소자 처우개선을 외치며 40여 일 단식 투쟁을 한 곳도 여기다. 단식 투쟁은 들불야학 강학 신영일도 함께했다. 광주교도소는 2015년 10월 새로 지은 삼각동으로 옮겨갔다.
▲ 문흥동 고가도로에서 본 옛 광주교도소 풍경. 높은 담과 감시탑에서 오래 전 교도소였음을 직감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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