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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6월 세계 일주를 떠난 나혜석은 이듬해 3월 이탈리아 밀라노로 향했다. 두오모 성당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고, 라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봤다. 두오모 성당 근처 라 스칼라 극장 외관은 지금도 화려하기보다 여느 건물처럼 소박하다. 하지만 극장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발레가 공연된다.
농협 마이너스통장 나혜석도 그렇게 느꼈던 듯하다. ‘외관은 평범하지만 무대배경이며 출연하는 수백명 배우의 의상, 연기, 노래, 음악이 빈틈이 없었다. 나로서는 파리에서나 베를린에서 보지 못하던 것을 보았다. 거기 앉아 관람하는 나는 무한히 행복스러웠다.’
아쉽게도 나혜석은 어떤 작품을 봤는지 밝히지 않았다. 무한한 행복을 느낄 만큼 감동을 어느직장인의하루 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이탈리아 오페라 종가로 꼽히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롯시니, 도니체티, 벨리니를 비롯 베르디 '나부코', 푸치니 '나비부인' 등 오페라 걸작이 초연된 곳이다. 100년 전 화가 나혜석과 테너 이인선이 이 극장에서 오페라를 보고 기록을 남겼다. / 자동차저금리 김기철기자
◇밀라노 오페라 유학온 이인선
‘오후9시에 시작됐는데 7시반에 벌써 6층으로 된 광대한 스칼라의 관람석은 가득 찼습니다. 광활한 스테이지,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웅대하고 화려한 스칼라를 처음으로 대할 때에 소리없이 감격하고 취했을 뿐이었습니다.’
193 캐피탈 5년1월16일 마스카니의 신작 ‘네로네’(Nerone)가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카발레리라 루스티카나’로 이름난 마스카니가 직접 지휘했다. 테너 이인선은 극장 6층 꼭대기 자리에서 초연을 봤다. 그 자리도 우리 돈 15원(50리라)을 내야했다. 설렁탕 100그릇값이 넘었다.
‘마스카니 지휘의 오케스트라는 과연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과목 영어로 100여명의 코러스의 웅장한 것도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최종막이 내려오자 주연 마스카니가 광적으로 박수를 받고 산회하였습니다.’(‘음악의 본향인 밀라노를 찾아서:마스카니 음악’4, 조선일보 1935년6월9일) 이인선의 리뷰에는 이탈리아 오페라 종가(宗家)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을 본 감격이 묻어난다.
테너 이인선은 한국인 성악가 최초로 밀라노 유학을 감행한 선구자였다.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의사이기도 한 이인선은 1948년 1월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올려 한국 오페라의 선구자가 됐다.
◇‘청중 전부를 신비경으로 싣고 가’
이인선(1906~1960)은 밀라노에 유학한 첫 한국 성악가였다. 평양 출신으로 연희전문 문과를 다니다 세브란스의전을 나왔다. 재학시절부터 선교사에게 피아노와 성악을 배워 음악회에 자주 출연했다. 의전 졸업후 황해도 황주에 병원을 개업했지만 오페라에 대한 꿈은 버릴 수없었다.
그는 오케레코드 이철 사장 주선으로 1934년 6월 이탈리아 밀라노 유학에 도전했다. 당시 인기있던 이탈리아 명테너 티토 스키파(Tito Schipa·1889~1965)가 활약한 라 스칼라 극장에 대한 선망때문이었다.
1월21일 밤 티토 스키파가 출연한 라 스칼라 극장 ‘베르테르’를 봤다. 이인선이 모델로 삼은 스키파를 만나는 기회였다. ‘청중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이 대가의 연주를 놓치지 않으려고 물밀듯이 몰려왔었습니다. 완숙한 그의 연기와 자아를 잃어버린 경지에 들어가는 열연은 청중 전부를 알지못할 신비경으로 싣고 갔습니다.’
이인선이 보내온 '음악의 고향인 밀라노를 찾아서' 기사. 1935년1월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린 마스카니 오페라 '네로네' 초연을 보고 '소리없이 감격하고 취했을 뿐'이라고 썼다. 조선일보 1935년6월9일자
◇‘휴장이라 구경 못한 게 유감’
1933년 4월 세계일주를 떠난 이순탁(1897~?)은 그해 6월28일 밤 밀라노에 도착했다. 라 스칼라 극장 명성을 익히 듣고, 오페라를 볼 마음을 먹었던 듯하다.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나온 이순탁은 당시 연희전문 상과 교수로 재직중인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두오모 성당을 찾은 이순탁은 라 스칼라 극장을 같이 둘러봤다. ‘이 부근에는 유명한 스칼라 가극장이 있는데, 그것은 이태리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에 그 이름을 올리는 가극장이다. 외관은 그다지 찬란한 것이 없으나 내관은 7층의 관람석으로 된 그 설비의 굉장함이 실로 파리의 그것의 다음이다.’
하필 이순탁이 찾은 6월 말엔 공연이 없었다. ’가극 절기가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이므로 요사이는 휴장이라 구경못한 것은 유감이다. 본국서 떠날 때에 이 방면의 현(玄, 현제명으로 보인다)군이 특히 주의시키기 때문에 명심하고 온 것인데, 이러한 사정이 있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본사세계일주기행 플로렌스 지나 밀라노에 7,조선일보 1933년 8월22일)
지난 12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으로 지명된 지휘자 정명훈. 서른 여섯살이던 1989년6월 이 극장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데뷔한 이래, '라 트라비아타', '오텔로' 등 오페라 9편(84회)과 콘서트 141회를 지휘했다. 사진은 롯데콘서트홀 제공.
◇이탈리아 오페라 종가 ‘라 스칼라’ 음악감독 정명훈
지휘자 정명훈(72)이 내후년부터 리카르도 샤이에 이어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에 취임한다. 라 스칼라는 ‘나부코’ ‘오텔로’ ‘팔스타프’ 등 베르디 오페라 7편이 초연된 곳이다. 뿐만 아니라 롯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등 숱한 벨칸토 명작들이 초연된 이탈리아 오페라의 종가(宗家)다. 한국 축구인이 축구 종가(宗家)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 취임한 것 이상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정명훈은 1989년 6월5일 밤 8시 라 스칼라극장에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과 교향곡 6번 ‘비창’을 지휘하며 데뷔했다. 협연자는 파가니니 해석의 거장으로 이름높은 살바토레 아카르도(84)였다. 그간 오페라 9편(84회), 콘서트 141회를 이끌었다. 이 극장 음악감독을 제외하고 오페라, 콘서트를 가장 많이 지휘한 음악가라고 한다. 라 스칼라는 베이스 연광철, 박종민 등 우리 성악가들이 자주 서는 곳이기도 하다.
나혜석, 이인선이 관객으로 발을 들여놓은 지 100년, 이탈리아 오페라 종가(宗家)를 이끌 주역으로 우뚝선 정명훈의 활약이 기대된다.
◇참고자료
나혜석, 조선 여성 첫 세계일주기, 가갸날, 2017
이순탁, 최근세계일주기, 학민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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